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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스펙트럼 자녀를 둔 부모가 오해하는 영재성에 대하여

by persisto25 2025. 4. 14.

 

눈가리고 책 읽는 아이

자폐 스펙트럼 자녀를 둔 부모가 오해하는 영재성

자녀가 또래보다 조금 특별해 보일 때, 부모는 누구보다 먼저 그 변화를 감지합니다. 눈맞춤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또래보다 말이 늦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숫자에 강한 흥미를 보이고, 알파벳이나 한글을 스스로 깨치며, 놀라운 집중력으로 하나의 활동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의 마음속에는 혼란이 찾아오곤 합니다.

“우리 아이, 혹시 자폐일까요? 아니면 영재일까요?”

이 질문은 많은 부모님들이 실제로 상담실에서 꺼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특히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후, 아이가 보여주는 특정한 능력을 보며 ‘혹시 우리 아이는 숨겨진 천재가 아닐까?’ 하는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모님들께서 흔히 오해하게 되는 ‘영재성’의 개념과 자폐 아동이 보이는 특이한 능력의 본질은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특정 능력’과 ‘영재성’은 다릅니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 중 일부는 특정 영역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달력 날짜를 외우거나, 복잡한 노선도를 기억하고 그릴 수 있으며, 빠르게 숫자를 계산하거나 음악의 음을 정확히 구별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능력은 대개 비정형적인 기억력 또는 감각에 대한 민감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런 능력이 영재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영재는 특정 영역의 능력보다도 전반적인 인지 발달의 균형과 문제 해결력, 추론력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개념입니다.

즉, 특정 자극에 대한 빠른 반응이나 반복된 학습 결과로 나타나는 능력만으로는 영재라고 판단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자폐 아동의 집중력, ‘몰입’이 아닌 ‘반복의 안정감’일 수 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은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자극에 대한 반복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같은 그림을 수십 번 그리고, 동일한 퍼즐을 여러 번 반복하며, 선호하는 영상이나 단어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곤 하지요.

이런 행동은 겉으로 보기엔 마치 집중력이 뛰어나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과제 수행을 통한 인지 확장의 과정이라기보다는, 불안한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 가능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이 아이는 집중력이 탁월하다”, “몰입력이 뛰어나다”라고 해석하는 순간,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놓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왜 그것을 반복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조기 습득’은 인지 발달의 전반적 성숙과는 다릅니다

자폐 아동 중 일부는 글자나 숫자를 또래보다 훨씬 일찍 익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하이퍼렉시아(hyperlexia)’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는 언어적 이해력보다는 시각적인 패턴 인식 능력이 뛰어난 경우에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라 하더라도, 그 말의 의미나 문맥, 감정적 뉘앙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는 “우리 아이는 네 살에 신문을 읽었어요”라는 자부심을 가지시며 영재의 가능성으로 해석하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무엇을 ‘읽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해석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즉, 기능적 습득과 개념적 이해는 다르며, 영재성은 후자에 더 가까운 발달 과정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부모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아이에게 부담이 됩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자녀를 둔 부모님께서 때때로 “우리 아이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천재예요”라고 말씀하실 때, 그 안에는 세상의 편견과 진단의 낙인을 견뎌내려는 애틋한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그 마음은 너무나 이해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동시에 그 기대가 아이에게 ‘영재가 되어야만 가치 있는 존재’라는 무의식적인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점도 조심스럽게 돌아보셔야 합니다.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재능이 있든 없든, 뛰어난 성과를 내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해주는 것이 자폐 아동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오해보다는 이해, 판단보다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자폐 스펙트럼 아이는 일반적인 발달 경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반응합니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특별한 능력’이 진정한 영재성인지, 혹은 그저 안정감을 찾기 위한 반복의 결과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전문가의 평가와 함께, 부모로서의 차분한 관찰꾸준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 반복하는 것, 어려워하는 것, 피하려는 것들을 비교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진짜 교육의 출발점이 됩니다.

결론: 진짜 특별함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있어도 존중받는가’입니다

자폐 스펙트럼 자녀를 둔 부모님께서는 자녀의 능력을 통해 미래의 가능성을 찾고 싶어 하시며, 때로는 그것이 영재성과 연결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특별함은 ‘남보다 잘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과 달라도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건강하게 자라는 것에 있습니다.

부모님이 먼저 아이의 다름을 이해하고, 재능이 있든 없든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인정해 줄 때, 아이는 비로소 세상과 건강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 아이가 영재든 아니든,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부모의 따뜻한 시선과 기다림입니다.